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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 여행자의 동반자

작성자
크루즈포유
작성일
2016-07-26 11:18
조회
1489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그가 연주한 ‘Birth of the Cello’.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그가 연주한 ‘Birth of the Cello’.


일요일 오전 9시는 여행자들의 시간이다.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루를 길게 쓰려면 달리 도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휴일 아침 도시에는 독특한 리듬감이 있다. 문을 여는 상인의 손길은 아첼레란도(점점 빠르게), 낯선 여행객의 발걸음은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 일상을 꾸리는 규칙적인 리듬과 일상을 떠나온 여유로운 리듬이다.

아무래도 여름에는 좀 느리고 단순한 것이 좋다. 팥빙수도 팥만 들어간 게 좋고 음악도 음표가 좀 적은 게 낫다. 그래서 끈적끈적하지 않은 단선율곡이나 소나타가 좋다.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내 마음은 마른 나무 냄새가 나는 첼로 독주곡에 가 있었다.

음반장 앞을 서성였다. 아뿔싸! 이곳은 오래전 바흐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에 점령당했다. 파블로 카잘스부터 수십 여 첼로의 명장들과 기타나 류트, 하물며 색소폰 연주자까지 바흐의 깃발 아래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흐를 피해 다른 곡을 찾고 싶었다. 조금 더 살펴보니 막스 레거의 음반도 보였고, 야곱 클라인이나 알프레도 피아티의 음반도 보였다. 하지만 단 한 번에 눈을 사로잡은 것은 ‘첼로의 탄생(Birth of the Cello)’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율리우스 베르거의 음반이었다. 오래된 첼로의 고혹적인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문양이 첼로 몸에 새겨져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신이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인공처럼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이 아니라 “당신의 무늬에 건배를” 하고 싶을 정도다.

‘첼로의 탄생’은 비교적 덜 알려진 작곡가들의 곡을 담고 있다. 17세기 말 이탈리아 작곡가인 데글리 안토니니와 도미니코 가브리엘리의 독주곡이다. 이들은 리체르카레(Ricercar)라는 형식의 기악곡인데, 쉽게 이야기하면 바로크 시대 푸가의 형님뻘 된다. 그 계보를 증명하듯 바흐의 유명한 곡 ‘음악의 헌정’에도 ‘6성 리체르카레’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형식은 원래 성악에서 나온 것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건반악기를 위한 곡으로 바뀐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 비올족들이 개량되면서 첼로를 위한 독주곡이 쓰인다.

안토니니의 첫 곡은 “딱 바로크음악이네”라고 할 만큼 선율과 진행이 익숙하다. 푸가의 기원이 된 모델답게 구조적 반복이 두드러지며 기악 연습곡으로서의 효과도 살리고 있다. 반복되는 첼로 음형의 강약이 어둠 속에 길을 내듯 후텁지근한 공기를 가른다. 하얀 종이 위에 검은 붓을 들어 한 번에 내리긋는 모습처럼 시원하다. 두 번째 곡은 느리게 시작되는데 곧이어 짧은 도약과 템포가 수시로 바뀐다. 낭만파 시대 음악처럼 커다란 변화는 아니지만 제한된 틀 안에서 오밀조밀한 변화가 있다. 다섯 번째 곡에서는 첼로가 방황하듯 낮은 음들 사이를 기웃거린다. 첼로가 딛는 걸음 사이에서 오래된 나무향이 난다.

가브리엘리의 후배격인 안토니니의 곡은 조금 더 자유롭다. 그래서인지 후반부에 배치된 그의 곡들에 더 애정이 간다. 안토니니의 첫 번째 곡은 4분 음표가 상승하면서 하나의 테마를 이루고 조금씩 반복된다. 쉼표와 2분음표 다음에 등장하는 오르내림이 변화를 이끈다. 바흐의 느린 춤곡을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곡이다. 다음 곡은 비교적 긴 7분대다. 악상의 변화가 훨씬 자유롭고 첼로는 옥타브를 약동하며 짧은 드라마를 완성한다. 마지막 곡인 7번째 리체르카르의 도입부는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세례 요한이 예수를 예비하듯 이제 우리는 바흐를 맞을 준비가 되었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허공을 가르던 첼로는 조용히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온다. 주변에서 말린 나무향기가 난다.

이 음반의 주인공은 표지에 나온 악기 그 자체이기도 하다. 율리우스 베르거가 사용하는 첼로는 프랑스의 샤를 4세를 위해 제작된 1566년 아마티 첼로다. 가장 오래된 첼로 중 하나다. 몇 번의 손바꿈이 있었고 중간에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베르거는 80년대 중반 이 악기를 우연히 연주해 보았으나 그때는 인연이 닿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기회가 온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카사블랑카’의 주인공 험브리 보가트는 다시 돌아온 연인을 보내주지만 그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앨범 내지를 보면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그의 아마티 첼로를 탐낸 일화가 나온다. 다행히 율리우스 베르거와 아마티 첼로의 애정 전선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다. 악기를 둘러싼 희대의 스캔들이 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누구나 여행가가 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음반에 담긴 오래된 첼로 소리는 일상을 떠난 여행자의 ‘바람구두’가 되어 주기에 충분하다.

글 엄상준 KNN방송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