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8/14]네가 가라 하와이? 내가 간다 하와이!

작성자
크루즈포유
작성일
2017-11-04 19:09
조회
1931

섬 서쪽 관문 코나에서 하룻밤…`코나 커피` 마시며 오션뷰 만끽
구름 위의 화산 마우나케아 흙도 하늘도 온통 검붉은 세상
섬 동쪽 힐로에서 트래킹하면 바위틈서 수증기가 모락모락…아! 살아있는 섬이구나




■ 검은 땅이 품은 강한 생명력…하와이 '빅아일랜드'를 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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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한다. 하와이는 뻔한 휴양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 여행지 리스트에서 미루고 또 미뤘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기도 했고, 사진도 거기서 거기였으며, 장난 삼아 던지던 '니가 가라' 대사는 도리어 '내가 가기는 싫은'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와이키키에는 서핑을, 호놀룰루에서는 쇼핑을 이미 한 것 같았다. 연상되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하와이는 상상의 여지를 내어주지 않는 여행지였다.

그런데 의외의 포인트가 생겼다. 여행 예능 '뭉쳐야 뜬다' 덕에 뜬 활화산 지대 빅아일랜드. 대신 오기가 생겼다. 헬기를 타고 가는 편한 '용암원정대' 대신 몸으로 걸어서 느끼는 원시적 형태의 원정대가 되기로.

인천에서 호놀룰루로 도착해 주내선인 아일랜드에어(Island Air)로 갈아타고 바로 빅아일랜드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빅아일랜드의 서쪽 관문 코나(Kona). 빅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도시는 동쪽의 힐로(Hilo)와 서쪽의 코나(Kona)다. 코나의 첫인상은 커피처럼 따뜻했다. 마을은 거대한 산에서 흘러내린 비스듬한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하나같이 태평양을 향해 있다. 그렇다 보니 모두가 오션뷰의 혜택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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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섬이지만 대륙이며, 검지만 빛나는 생명력 넘치는 곳 하와이 빅아일랜드.



에어비앤비를 통해 빌린 집도 그랬다. 우리 돈으로 1박에 15만원에 빌린 이층집에는 선인장과 열대식물이 가득한 너른 앞마당과 주차장이 있었고, 천장은 4m 정도는 돼 그러잖아도 넓은 집이 더 커 보였다. 인심이 넉넉한 호스트는 나가서 사 먹을 필요는 하나도 없다는 듯이 냉장고와 찬장에 먹을거리를 가득 채워주었다. 코나 커피를 한 잔 들고 발코니에 나가면 코발트빛의 바다가 펼쳐진다.

마우나케아(Mauna Kea)로 향했다. 코나에서 마우나케아로 가는 19번 하이웨이는 생애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왼쪽으로는 새파란 바다와 하늘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화산 폭발이 만들어낸 검은 현무암이 대륙처럼 펼쳐져 있다. 파란색과 검은색을 가로지르는 하이웨이를 막힘없이 달렸다. 마우나케아로 다가갈수록 구름이 낮아진다. 구름을 머리 위에 얹고 가다가 구름 속을 통과하면 구름이 발밑에 펼쳐진다. 두 발은 흙을 밟고 있었지만, '배추도사 무도사'처럼 영혼은 구름을 밟고 있었다.

마우나케아 정상으로 조금씩 다가갈수록 기온은 급격히 떨어져 얇은 긴팔 티셔츠와 긴바지가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여분의 티셔츠 하나를 목도리처럼 두르고 뜨거운 커피 한 잔을 하고 나서야 용기를 내 전망대에 갈 수 있었다. 검붉은 흙에 장작처럼 마른 나무들 사이에서 옅은 유황 냄새가 피어 오른다. 해발 고도가 4000m가 넘어 종종 고산병 증세를 느낄 수 있다더니 그게 바로 나였다. 관자놀이가 뻐근하고 숨이 조금 가빴다. 작고 하얀 섬 같은 구름은 발 아래로 보이는 거대한 분화구를 덮었다. 그리고 신기루처럼 순식간 사라졌다. 작렬하던 태양은 뜨거웠던 사랑의 흔적처럼 붉은빛만 하늘에 남겼다. 일몰을 보기 위해 긴 여정을 투자한 사람들은 말이 없다. 하염없이 바위에 앉아 있거나, 휴대폰과 카메라로 풍경을 담기에 바쁘다. 손이 시려 더 이상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때가 되니 하늘은 어느새 짙푸른 빛에서 검은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마우나케아의 밤이다.

다음날 향한 곳은 빅아일랜드의 동쪽 도시, 힐로(Hilo). 이글거리는 태양과 대결하는 듯 열대우림의 나무들은 저돌적으로 솟아 있다. 코나와 다른 점이다. 코나가 온화하고 낮은 느낌이라면 힐로에서는 단단한 힘이 느껴진다. 파도는 거칠었고 비는 자주 내렸으며, 화산국립공원의 붉은 용암과 광활한 검은 땅이 연상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곳의 백미는 화산 트레킹이다. 화산국립공원에서 지름이 2~3㎞나 되는 거대한 분화구 속을 걷는다. 화산 폭발이 만들어낸 분화구는 검게 타버린 커다란 냄비처럼 푹 파였고 넓고 평평하다. 거대한 고사리가 가득한 수풀 길을 30여 분 걸어 내려와 분화구 속으로 들어가니 바람 한 점 없는 호수처럼 고요하다. 분화구의 지름을 재듯 희뿌연 길이 남아 있다. 수많은 사람이 걸어다닌 흔적이다. 낮게 자란 나무에는 붉은 꽃이 용암처럼 피어 있다. 향기는 코를 찌를 정도로 짙어 이곳까지 벌들이 날아든다. 바위 틈으로 고개를 삐죽 내민 식물 뒤로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이 땅은 아직 살아 있다는 듯이.

분화구 한가운데 누워 하늘을 보니, 구름이 소리 없이 흘러간다. 태양의 온기가 남아 등이 따뜻하다. 빅아일랜드는 죽은 듯 보이지만 살아 있는 화산이다. 섬이지만 대륙이며, 검지만 빛난다. 빅아일랜드에서 조용하지만 강력한 생명력을 느꼈다.




▶ 빅아일랜드 100배 즐기는 Tip

1. 무조건 사륜구동=빅아일랜드에서는 사륜구동 자동차를 빌리는 것을 추천한다. 이륜구동으로도 웬만한 곳을 다닐 수는 있지만, 마우나케아 정상으로 올라가거나 사우스포인트의 거친 길을 즐기기 위해서는 사륜구동이 필수다.

2. 외투는 필수=마우나케아는 춥다. 산으로 오를수록 급격이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도 강해진다. 정상에서는 기온이 영하까지도 떨어진다고 하니 두꺼운 외투는 필수다. 정상까지 오르지 않더라도 최소한 가을~초겨울 옷차림은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3. 그 유명한 코나 커피는 꼭 맛볼 것=코나에서 코나 100% 커피는 웬만한 커피숍에서도 3달러 정도면 사 먹을 수 있다. 커피에 대한 취향은 모두 다르겠지만, 코나 커피는 초보자가 마시기에도 썩 무난한 편이다. 넘어가는 느낌은 부드럽고, 과일향과 초콜릿향이 혀에 어렴풋이 맴돈다.

[빅아일랜드(하와이) = 김진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