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6/22] 아랍-노르만의 문화를 꽃피운 팔레르모

작성자
크루즈포유
작성일
2021-10-10 10:10
조회
561

팔레르모의 카펠라 팔라티나. 화려한 모자이크 장식이 눈 부시다. 

그리스인과 카르타고인들이 머물던 시칠리아는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의 속주가 되고 말았다. 로마 지배하의 1,000년 시칠리아는 단순한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시라쿠사 같은 도시국가가 지방의 소도시로 몰락하는 등 쇠락의 길을 걸었다.


로마의 힘이 약해지며 시칠리아는 쉽사리 사라센에 넘어갔다. 로마를 몰아낸 사라센은 시칠리아에서 찬란한 문명을 이식시켰다. 아랍의 빼어난 과학과 농업 기술이 접목됐다. 시칠리아는 신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이교도를 쫓아내기 위해 바이킹의 민족인 노르만인들이 시칠리아에 쳐들어 왔다. 노르만인들은 마침내 그들의 염원이었던 ‘태양의 제국’을 시칠리아에 실현시켰다.


그 중심이 팔레르모(Palermo)다. 831년 사라센의 지배 이후 항구는 번영했고 매우 세련된 도시가 됐다. 1072년 사라센을 공격해 무릎 꿇린 노르만의 로저 1세는 스스로 왕국의 왕으로 올라섰다. 그는 현명했다. 팔레르모의 두뇌인 아랍인, 그리스인 등을 쫓아내지 않고 그들과 함께 도시를 변화시켜 나갔다.




카펠라 팔라티나.

카펠라 팔라티나.

카펠라 팔라티나.

이런 팔레르모의 역사가 한 곳에 응축된 곳이 카펠라 팔라티나(Cappella Palatina)다. 궁정 예배당인 이곳은 로저 2세에 의해 조성됐다. 눈부신 모자이크화와 아랍 스타일의 나무 천장 등이 어우러져 독특한 아랍-노르만의 양식을 보여 준다. 교회의 안쪽 벽면을 가득 채운 모자이크화는 구약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경을 읽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그 상황들을 자세하게 그림으로 보여 준 것.




팔레르모 대성당.

팔레르모 대성당.

팔레르모 대성당 입구 기둥에 새겨져 있는 코란 글귀.

몬레알레 대성당.

팔레르모 대성당에서도 아랍-노르만 양식이 돋보인다. 9세기에 세워진 모스크를 기반으로 대성당을 올린 것. 입구 기둥 한곳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의 글귀가 그대로 새겨져 있다.


팔레르모 외곽의 몬레알레 대성당도 같은 문화를 담고 있다. 바깥쪽이 제대로 완공되지 않아 휑해 보이지만 내부는 마치 금박을 새겨놓은 듯 화려하다. 비잔티움과 그리스인 장인들을 동원해 완성한 세밀한 모자이크화가 온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팔레르모의 오페라 극장 테아트로 마시모.

테아트로 마시모.

시내의 테아트로 마시모는 팔레르모 시민들의 자부심이다. 유럽에서는 3번째, 이탈리아에서 제일 큰 오페라 극장이다. 아르누보 양식의 베르디 동상과 거대한 사자 상이 입구를 지고 있다. 이 극장은 영화 ‘대부’의 라스트 신으로도 유명하다.




무어인의 얼굴 화분.

팔레르모 등 시칠리아 가정의 발코니엔 남자얼굴 모양의 화분이나 화병이 자주 보인다. 무어인의 얼굴로 불리는 화병이다. 사라센이 지배하던 시절 한 무어인 군인이 팔레르모의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 귀국을 앞둔 그가 사실은 고국에 처와 자식이 있다며 기다려 달라 고백했지만 여인은 참을 수 없었다. 여인은 그가 떠나기 전날 밤에 남자의 머리를 베어선 화병으로 만들어 바질을 꽂아 발코니에 내놓았다. 그 바질이 유독 잘 자라자 이웃들이 앞다퉈 무어인 얼굴 모양의 화병을 주문했단다.


시칠리아(이탈리아)=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